작별(作別)

엊그제 그의 부음(訃音)을 들었습니다
두 주 전쯤 소식 듣고 찾아간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주잡은 제 손등 위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는데
제가 잘 알아보지 못하니까
고개를 기울여 제 귓전에 입을 대고
바람이 픽픽 새는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 멋진 사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소리를 치고 싶은데
그는 평화로운 얼굴로 저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삶의 벼랑 끝에 서서 타인을 향해 '멋진 사람'이라고 속삭일 수 있는 사람
그가, 그가 말한 바로 그 '멋진 사람'이 아닐까요
병도 없고 고통도 없을 나라에서 평안하기를 기도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 손을 잡으면
그때는 제가 먼저 그렇게 인사하렵니다
─ 멋진 사람

김승규 권사가 이 세상을 떠나 본향으로 돌아갔습니다

(2018.8.20)


이때쯤이었지, 하고 들쳐본 수첩에 적힌 몇 줄 글이 삐뚤빼뚤 마뜩찮다.



Gottfried H. Stölzel(1690 - 1749), Aria, Bist du bei mir, BWV 508
Marilyn Horne, mezzo-soprano vocals /
Vienna Cantata Orchestra / Henry Lewis, cond. / Rec, 1969




당신이 곁에 계신다면

당신이 제 곁에 계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안식을 취하겠습니다.

당신이 제 곁에 계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안식을 취하겠습니다.

아, 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마지막인가요.
당신에게 바라나니, 아름다운 당신의 손길로
내 충실한 두 눈을 감겨주시길.

아, 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마지막인가요.
당신에게 바라나니, 아름다운 당신의 손길로
내 충실한 두 눈을 감겨주시길.

당신이 제 곁에 계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안식을 취하겠습니다.





바로크 시대 독일 작곡가 고트프리트 하인리히 슈텔첼의 아리아
'그대가 나와 함께라면'은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음악 노트에 수록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남녀의 사랑을
잔잔하고도 소박하게 그리고 있는 이 사랑스러운 소품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명가수들도 즐겨 불렀으며
작곡가가 누구든 관계없이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







다시 라인베르거의 오르간 소나타 한 악장을 듣는다.
아내를 만나며 알게 된 오르간의 특징은 한마디로 천변만화다.
갖가지 악기의 음색을 낼 수 있는 수십 가지의 솔로 스탑,
여러 단의 건반, 심지어 발로도 건반을 연주한다.
아내는 평생 오르간을 연주하며 살았지만, 볼 수가 없게 되어 늙기도 전에 은퇴해야 했다.
퍽 아프다
.


https://youtu.be/uITDdYMUERI

Organ Sonata No.11 in D minor, Op.148- II. "Cantilene", Organ : Johannes Schröder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나가니 어머니는 등을 지고 서 계셨다.
  ​이울기 시작하는 늦은 가을 햇살은 다사롭게 내려와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과 동그마한 어깨를 엷은 실루엣으로 보이게 했다. 허둥허둥 뛰어오는 막내의 모습을 보지 않고자 하셨던 걸까. 아마 울고 계시는 건지도 몰라.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돌아서시는 어머니는 그러나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손을 내미셨다.
  ​가만히 잡아주시는 거치나 따듯한 손길, 가없이 고요하고 그윽한 눈길로 어머니는 수많은 말을 하고 계셨고 나는 그 말씀들을 다 알아들었다. 얼굴을 한번 쓰다듬던 손길로 토닥토닥 어깨를 다독여 주시고는 “밥 잘 먹어라” 하시며 짐짓 씩씩한 걸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시는 어머니를 그새 더 기운 햇살 속에서 눈부셔하며 바라보던 고등학교 1학년짜리 소년 하나….
  ​어머니는 청주 터미널에서 보은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나서야 눈물을 지으실 것이었다. 내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씀들을 그제야 허허로운 당신의 속에다 털어놓으실 것이었다. 홀로 남은 막내아들이 그리워 학교로 찾아와 잠깐 만나보는 그 먼 길을 흔들리며, 반나마 잎이 진 가로수 하나하나에 당신의 소망을 깃발처럼 걸어놓기도 하실 것이었다.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릴 적 동무들과 하던 얘기들은 힘들이지 않아도 서로 까르르 까르르 즐거웠다. 지금도 오래된 벗을 만나면, 격의 없이 가슴속의 말을 뱉어내더라도 거리낌이 없다.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그러나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라도 스스로 의도한 말을 듣는 이에게 십분 적확하게 전달할 줄 아는 이가 있다면 그는 굉장한 사람일 것이다. 남을 이해하고 남의 이야기를 수긍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말 또한 한가지여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인지를 분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최근에 어떤 이와 이런 일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분이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을 사귀는 일에 젬병인 나는 꽤 시일이 지나도록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그이를 대했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도 드러낸 일이 없는 내게 그이는 어떤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일까. 몇 번 주고받은 메일을 내가 심상(尋常)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에 반하여 그이는 거기 자신의 무엇인가 내밀한 속내를 담아두고 있었나 보았다.
  ​그러나 이러저러하다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그이의 시인(詩人)다운 깊은 은유(隱喩)를 나는 전혀, 아주 깜깜하게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게 사달이 되었던가 보았다. 그이가 나를 퍽 섭섭해하고 더더군다나 상처를 받았다고까지 하였다니!
  ​그이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대놓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이 닫아 걸린 문(門)은 그대로 깜깜한 벽(壁)이었다.
  ​누가 그랬다. 잘 설명해 보라고. 그러나 소통은 어느 일방의 읍소(泣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말을 멈추었다. 그이가 문을 닫아버렸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 그이는 그이대로 가슴을 앓고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대체 무엇이 그이를 그리 만들었는지를 알지 못하니 섣부른 소리는 더욱 할 수 없었다.
  ​누가 또 그랬다. 기다리라고. 그렇다.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기다리는 중이다. 그 기다림의 끝에 행운이 찾아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은들 어찌하겠는가 하고.
  ​그러다가, 육중한 학교 문을 등지고 서 계시던 자그마한 어머니의 등을 떠올렸다. 평생 한 번도 당신의 웅숭깊은 속을 드러내어 말씀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깊은 눈을 생각했다. 나는 등으로 하는 당신의 말씀을 모두 알아들었다. 눈으로 전하시는 이야기를 십분 이해했다.
  ​어머니와 나누던 그 말 없는 대화는, 무엇으로 그렇게 온전하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그것은 사랑이다. 그것도 신(神)의 사랑에 견주어지는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이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무엇보다도 서로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 줍니다”라고 권면(勸勉)하는 성경의 말씀과도 같이, 남들과의 사이에도 그러한 소통의 밑바탕에 과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깔렸다면 섣부르게 일어날 오해나 상심 따위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이를 대하면서 그이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옳고 틀리지 않았다는 교만한 생각을 내려놓고 그이의 마음 씀과 염려를 헤아릴 수 있었다면, 모처럼 만난 좋은 인연을 이렇게 무지르는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잠시 미루어두고, 겸손하게 기다리기로 한 결정에 충실히 하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행여 그이가 얽어맨 오해를 스스로 풀거나 넓은 마음으로 내게 다시 눈길을 보내올 때, 그때 뭐라고 말을 해도 늦지 않을 것 아닌가 싶다.
  ​그이가 끝내 그런 몸짓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여도, 뒤늦게나마 품어 안은 이 사랑의 마음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언제 쓴 건지도 모르는 긴 글 하나를 만났다. 만났다고 하니 좀 우습지만, 나는 내가 쓴 글을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일이 더러 있다. 아무데에 잘 정리해서 보관할 줄을 모르고 남의 집에다 푸념 삼아 올려놓았던 것이나 흘리고 온 것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니 내 글이라도 새삼스럽게 만나게 되었다고 할밖에. 이것도 그런 류類다. 여긴 내 집(?)이니 여기다 옮겨놓기로 한다. 비망備忘으로다. 하긴 망실忘失해도 크게 섭섭할 일도 아니긴 하지만.



Antonio Bazzini(1818~1897), Scherzo Fantastique, Op.25
“La Ronde des Lutins(요정의 춤)”


https://youtu.be/B0klywZ9k6w

Svetlin Rossev, violin / 손열음, pianoforte

 

밝고 빠른 바이올린 한 곡을 찾아
문득 떠오른, 치기(稚氣) 가득한 ─ 해묵은 단상(斷想) 위에 얹어놓고 듣는다.

 

*


  비를 맞으며


  문을 나서니 소록소록 는개가 내린다.
  비가 오는 것 같지도 않아 우산을 펴들기가 열없는데, 그래도 한참을 그냥 걷다 보면 시나브로 옷이 젖어 들 것이다. 이런 날은 정한 곳이 없더라도 하염없이 걸었으면 좋겠다. 어려서처럼 우산도 내던져버리고 싶지만, 산성비로 오염된 대기가 불현듯 떠오르는 낭만을 무지르고 만다.
  그쳤나? 우산을 젖히고 고개를 들면 는개는 흘러가듯 가만가만 메마른 내 얼굴 위에 내려와 얹힌다.
  어려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참 많이도 걸었다. 여름비도 몇 시간을 후줄근히 맞고 나면 입술이 파랗도록 한기가 찾아오기는 하지만, 장맛비 속을 그렇게 걷고 나면 가슴 안에 고여 있던 검붉고 큼직한 흉터 하나가 씻겨나가는 것만 같아서 그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가도 비가 쏟아지면 그저 뛰쳐나가고는 했다. 물이 뚝뚝 듣는 시르죽은 모양으로 하학길 버스에 오르면 여학생들은 기겁을 하고 몇 걸음씩 물러났었다.

  주성(舟城)이라고도 불리던 시골의 작은 도시는 이물에서 고물까지를 꿰뚫어 걸어도 그저 한 시간 남짓이면 넉넉했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검은 교모(校帽)를 더 깊이 눌러쓰고 타박타박 빗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삶이었을까. 막연하여 손에 잡을 수 없는 미래였을까. 60년대 말(末)의 누구라고 예외가 있었을까만, 곤고(困苦)한 집안의 형편 따위였을까.
  무엇이 나를 빗속으로 끌어냈는지, 쏟아지는 빗줄기가 내 안에서 씻어 간다고 믿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지금도 적확(的確)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랴! 비만 오면 나는 빗속에 있었다. 우산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맨몸으로 비를 맞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왜? 왜라고 묻는 것은 속절없다. 왜인들 어떠랴! 비가 오시므로 비를 맞았다.
  지금 되생각해 보아 다만 아쉬운 것은 그때 발을 벗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거다. 맨몸에 맨발이었다면 그 씻김이 더욱 간절하지 않았을지….

  일찍 학교에서 돌아온 날인지 쉬는 날이었는지, 제법 포기가 번 무논에서, 혼자 피사리를 하던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갑자기 발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논에서 멀지 않은 팔결 냇가의 제방(堤防)으로 달려가 수문(水門) 꼭대기로 올라서서 비를 맞았다.
  천둥이 우르릉 울고 번개는 번쩍 하늘을 갈랐다. 들에서 번개가 치면 낮은 곳으로 몸을 숨기라는 상식을 모르지 않았지만, 들판보다 높은 제방 그보다 더 높은 수문의 꼭대기로 기어오르며 나는 한순간 번개의 고압 전류에 감전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지 그날 거기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노래를 불렀다. ‘목이 메여 불러보는 내 마음을 아시나요…’, 기억이 분명치는 않아도 아마 그즈음에 유행하던 대중가요였기 십상이다. 목이 메도록 부르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지….
  순간, 우르릉, 번쩍. 천둥소리와 거의 동시에 쩍 소리를 내며 수문 꼭대기에 떨어진 번개는 그 가운데 박힌 철 구조물을 타고 땅으로 꽂히며 진저리를 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수문에서 제방 아래의 풀 무더기로 내동댕이쳐져 있었는데, 그게 스스로 뛰어내린 건지 아니면 무엇인가 나 아닌 것의 의지로 그리된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아무튼, 수문 위에서 그저 목이 메고만 있었다면, 그리던 대로 낙뢰에 바짝 구워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세게 퍼붓던 소낙비가 멎고 그리고는 반짝 해가 났다. 나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논으로 돌아가 해지도록 피사리를 하고, 그날 유난히도 곱던 노을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잎의 모양이 서로 다르기도 하지만, 볕에 비추어보면 피는 벼의 잎보다 참 맑은 연둣빛으로 말갛게 제 속을 드러내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억세고, 벼에게는 이롭지 못한 그 예쁜 빛의 덩이를 솎아내는 것이 피사리다.
  그날 열기로 가득한 논에 엎드린 어린 가슴에 사는 일과 죽는 일의 속절없음이 절절하게 깨우쳐지던 것을 상기도 기억한다. 삶과 죽음이란 번쩍하는 한 순간의 기로(岐路)인 것이다. 제아무리 예쁜 빛으로 치장을 해도 가차 없이 그것을 거두는 농부의 엄정(嚴正)한 손길이 있음은 또한 얼마나 엄정(嚴整)한가.

  생각이 별스럽게도 튀었지 싶다. 흩날리는 는개, 그렇구나, 는개는 내린다고 말하기보다 눈발처럼 흩날린다고 해도 좋겠다.
  흩날리는 는개 속을 헤엄치듯 걸으며 떠올린 옛 생각 하나가 멋쩍다. 쉰을 활씬 넘긴 지금은 말할 수 있는가. 왜 걷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걷게 하는지….
  세상은 지금 온통 어지러운 는개뿐이다. 태초의 카오스와도 같은, 끝없는 는개의 바다.                                 
(2006.06.27.)




별은 꿈을 꾸지 않는다.
별에게 꿈을 꾸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꿈을 꿀 줄 모르는 별에게 짐짓 꿈꾸기를 부담하는 것은 다만 사람의 욕심이겠다.
나는 별에게 지나친가? 별을 꿈꾸게 하는 그 사람에게 그런가?
이래서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거다.^^

지난 꼭지에서 국악기로 연주된 남미의 음악을 들었으니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음악을 우리 악기의 연주로 듣는 것도 의미가 있지 싶다.
퍽 낯설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전승되었다는, 생황이라는 악기다.



https://youtu.be/gYwxrXKSeAI

박경훈 작곡, “꿈꾸는 별” 생황 김효영, 피아노 조윤성
 

생황(笙簧)은 한국의 전통 관악기로, 중국의 악기인 '()'이 삼국시대에 들어와 토착화된 악기이다.
우리의 생황은 중국의 셩에서 크게 바뀌진 않았으나, 조금 더 작으며 튜닝법 또한 다르다.
본디 박(바가지)으로 통을 만들었기 때문에, 국악기 중 유일하게 포부(匏部)*에 속하며 한국의 관악기 중 유일한 화음 악기이기도 하다.
(
나무위키에서 발췌)

* 사전에서 포부(匏部)’를 찾아보면 팔음(八音)의 하나라고만 되어 있고,
다시 팔음을 찾으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악기를 만든 재료에 따라 여덟 가지로 분류하는 방법.
(), (), (), (), (), (), (), () 따위가 재료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포()는 박(바가지)을 뜻한다.





피아졸라의 "망각"이라는 곡이다.
반도네온이나 첼로 연주로 더러 듣곤 했는데, 오늘 우연히 국악 버전의 이 영상을 만나 여러 번 듣고 있다.
아쟁과 피리, 우리의 악기여도 부러 찾지 않으면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쟁이 첼로보다 더 아리게 가슴을 파고들고, 피리는 반도네온보다 활씬 깊숙하다.
듣기에 좋으면 좋은 음악이라는 것이 선곡을 하는 내 기준이다.
그런데 좋다. 그러면 됐다.

사족이지만, 나는 잊고 싶은 기억이 별로 없다.
음악은 음악으로 들을 뿐이다.



https://youtu.be/4mytcAZj1ys

Astor Piazzolla, "Oblivion" (국악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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