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라인베르거의 오르간 소나타 한 악장을 듣는다.
아내를 만나며 알게 된 오르간의 특징은 한마디로 천변만화다.
갖가지 악기의 음색을 낼 수 있는 수십 가지의 솔로 스탑,
여러 단의 건반, 심지어 발로도 건반을 연주한다.
아내는 평생 오르간을 연주하며 살았지만, 볼 수가 없게 되어 늙기도 전에 은퇴해야 했다.
퍽 아프다
.


https://youtu.be/uITDdYMUERI

Organ Sonata No.11 in D minor, Op.148- II. "Cantilene", Organ : Johannes Schröder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나가니 어머니는 등을 지고 서 계셨다.
  ​이울기 시작하는 늦은 가을 햇살은 다사롭게 내려와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과 동그마한 어깨를 엷은 실루엣으로 보이게 했다. 허둥허둥 뛰어오는 막내의 모습을 보지 않고자 하셨던 걸까. 아마 울고 계시는 건지도 몰라.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돌아서시는 어머니는 그러나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손을 내미셨다.
  ​가만히 잡아주시는 거치나 따듯한 손길, 가없이 고요하고 그윽한 눈길로 어머니는 수많은 말을 하고 계셨고 나는 그 말씀들을 다 알아들었다. 얼굴을 한번 쓰다듬던 손길로 토닥토닥 어깨를 다독여 주시고는 “밥 잘 먹어라” 하시며 짐짓 씩씩한 걸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시는 어머니를 그새 더 기운 햇살 속에서 눈부셔하며 바라보던 고등학교 1학년짜리 소년 하나….
  ​어머니는 청주 터미널에서 보은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나서야 눈물을 지으실 것이었다. 내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씀들을 그제야 허허로운 당신의 속에다 털어놓으실 것이었다. 홀로 남은 막내아들이 그리워 학교로 찾아와 잠깐 만나보는 그 먼 길을 흔들리며, 반나마 잎이 진 가로수 하나하나에 당신의 소망을 깃발처럼 걸어놓기도 하실 것이었다.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릴 적 동무들과 하던 얘기들은 힘들이지 않아도 서로 까르르 까르르 즐거웠다. 지금도 오래된 벗을 만나면, 격의 없이 가슴속의 말을 뱉어내더라도 거리낌이 없다.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그러나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라도 스스로 의도한 말을 듣는 이에게 십분 적확하게 전달할 줄 아는 이가 있다면 그는 굉장한 사람일 것이다. 남을 이해하고 남의 이야기를 수긍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말 또한 한가지여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인지를 분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최근에 어떤 이와 이런 일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분이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을 사귀는 일에 젬병인 나는 꽤 시일이 지나도록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그이를 대했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도 드러낸 일이 없는 내게 그이는 어떤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일까. 몇 번 주고받은 메일을 내가 심상(尋常)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에 반하여 그이는 거기 자신의 무엇인가 내밀한 속내를 담아두고 있었나 보았다.
  ​그러나 이러저러하다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그이의 시인(詩人)다운 깊은 은유(隱喩)를 나는 전혀, 아주 깜깜하게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게 사달이 되었던가 보았다. 그이가 나를 퍽 섭섭해하고 더더군다나 상처를 받았다고까지 하였다니!
  ​그이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대놓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이 닫아 걸린 문(門)은 그대로 깜깜한 벽(壁)이었다.
  ​누가 그랬다. 잘 설명해 보라고. 그러나 소통은 어느 일방의 읍소(泣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말을 멈추었다. 그이가 문을 닫아버렸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 그이는 그이대로 가슴을 앓고 있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대체 무엇이 그이를 그리 만들었는지를 알지 못하니 섣부른 소리는 더욱 할 수 없었다.
  ​누가 또 그랬다. 기다리라고. 그렇다.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기다리는 중이다. 그 기다림의 끝에 행운이 찾아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은들 어찌하겠는가 하고.
  ​그러다가, 육중한 학교 문을 등지고 서 계시던 자그마한 어머니의 등을 떠올렸다. 평생 한 번도 당신의 웅숭깊은 속을 드러내어 말씀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깊은 눈을 생각했다. 나는 등으로 하는 당신의 말씀을 모두 알아들었다. 눈으로 전하시는 이야기를 십분 이해했다.
  ​어머니와 나누던 그 말 없는 대화는, 무엇으로 그렇게 온전하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그것은 사랑이다. 그것도 신(神)의 사랑에 견주어지는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이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무엇보다도 서로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 줍니다”라고 권면(勸勉)하는 성경의 말씀과도 같이, 남들과의 사이에도 그러한 소통의 밑바탕에 과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깔렸다면 섣부르게 일어날 오해나 상심 따위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이를 대하면서 그이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옳고 틀리지 않았다는 교만한 생각을 내려놓고 그이의 마음 씀과 염려를 헤아릴 수 있었다면, 모처럼 만난 좋은 인연을 이렇게 무지르는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잠시 미루어두고, 겸손하게 기다리기로 한 결정에 충실히 하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행여 그이가 얽어맨 오해를 스스로 풀거나 넓은 마음으로 내게 다시 눈길을 보내올 때, 그때 뭐라고 말을 해도 늦지 않을 것 아닌가 싶다.
  ​그이가 끝내 그런 몸짓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여도, 뒤늦게나마 품어 안은 이 사랑의 마음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언제 쓴 건지도 모르는 긴 글 하나를 만났다. 만났다고 하니 좀 우습지만, 나는 내가 쓴 글을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일이 더러 있다. 아무데에 잘 정리해서 보관할 줄을 모르고 남의 집에다 푸념 삼아 올려놓았던 것이나 흘리고 온 것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니 내 글이라도 새삼스럽게 만나게 되었다고 할밖에. 이것도 그런 류類다. 여긴 내 집(?)이니 여기다 옮겨놓기로 한다. 비망備忘으로다. 하긴 망실忘失해도 크게 섭섭할 일도 아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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