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나,
어느 낡은 건물의 층계 모퉁이, 버려진 듯한 화분에 피어 있던 꽃 몇 송이가
내 휴대폰 카메라에 붙들려 온 적이 있다. 
저런 환경에서도 꽃을 피워냈다니! 하고 내심 탄성을 지르게 한
낯이 썩 익지 않은 그 꽃의 이름이 물 건너온 원예종 '가랑코예'라고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나마 화분의 흙이 웬만큼 영양분을 가지고 있었는지
꽃의 낯빛이 그렇게 비루하지는 않았던 것이 퍽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아다지오, 그래도 꽃은 천천히 꽃대를 밀어올렸을 것이다. 
칸타빌레, 그렇거나 말거나 노래하듯이 꽃잎을 열었을 것이다.
아다지오 칸타빌레.
나도 이제 이만큼 살아왔으니 그 꽃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서두를 것이 무에 있겠나, 천천히 노래하듯이 흘러갈 수 있으면 좋겠다.
느리게, 노래하듯이.


Beethoven Piano Sonata No.8 in C minor, Op.13 'Pathetique' 2nd mov., Adagio Cantabile

 

 


매일 바라보는 하늘도 늘 똑같지 않다.
매번 만나는 사람도 항상 같은 표정을 짓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고 만나는 사람들 또한
매일 매번 똑같은 '나'를 만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恒常心을 지킬 수 있어야 하는데, 
번번이 허방을 짚는 걸음걸음.

Trumpet, 박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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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덥다.
그래도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지는 않는다.
그래도 견딜 만하다.
그래도 여름은 지나간다.

물봉선 다문다문 피어있던 그 골짜기는 무더웠지.
꽃은 아마 초록에 질렸던 것 같았어.

Mozart, Clarinet Concert in A, KV 622, 2nd mov. Adagio







글쎄, 잘 모르겠다.
오래 묵었다고 다 잘 익은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오래 묵었다고 모두 쓸모없어진다는 말은 틀리지 않을까.
지워지고 잊혀지는 세대를 넘어
폐기되는 나이를 살고 있다.
고래(古來)로 드믈다는 연치(年齒)가 목에 찼다.


J. S. Bach, Siciliano
piano, Tatiana Nikolayeba









헨델의 "라르고"를 오르간으로 연주한 음원을 만난다.
합창으로 편곡한 것을 더러 부를 기회가 있어 좋아하는 곡인데 오르간으로는 처음 듣는다.
'라르고'라는 빠르기를 지시하는 용어가 곡의 제목이 된 음악,
좀 더 느리게 관조할 줄 아는 지혜를 젊어서 깨달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삶,
둘은 닮았다.


organ/ John 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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