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며


무슨무슨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정신없이 달리다가 문득
멈춰 서서 한참씩 뒤를 돌아보곤 한다더군
뒤미처 따라오는 자기의 넋을 기다리는 거라네
내내 숨 가쁘게 내달려만 왔으니 어지러워
내 영혼도 저기 어디쯤서 허정대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꼭 뒤돌아서서 기다릴 것까지는 없겠지
그래 이제는 좀 천천히
되도록 찬찬히 걸어야겠어
그러다 보면 잰걸음으로 달려오는
내 영혼과 쉬 해후할 수도 있을 거고
우리가 턱없이 놓치고 지나치던
눈부신 풍광(風光)들과 새삼스러운 인사도 할 수 있을 거고
차분차분 말 잔등에 흥건한 땀도 식혀줄 수 있을 거고
무엇보다도
무시로 불쑥불쑥 드러나곤 하던 얼빠진 나를 이제
그렇게 자주는 안 만나게 될 것도 같고

 

DannyBoy-GaryKarr.mp3
4.60MB

Gary Karr, double bass & Harmon Lewis, organ






https://youtu.be/BvvtjJMa8AM

Leroy Anderson, 고장난 시계(The Syncopated Clock) ─ 제주 CBS, 금난새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 중에서







보나마나 슬픈 일


누가
이게 너야, 하면서 불쑥 들이미는
나도 모르는 나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그건 내가 아닌 성싶은데
그 나를 들어보이는 그에게는
이 내가 결단코 내가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사람마다 제가끔 그들이 아는
서로 다른 나를 하나씩 가지고 있을 일이네요
이게 너야
무슨 일이 있을 때
그들이 저마다 내게 내보일 나는
과연 누구일까요










밀리는 밀려오는 밀려만 오는 파도
깊은 숨 쉬어 타는 불길을 식히고 돌아서면
정수를 때리는 아픔
헤아리기 싫은 연륜의 뒤안으로
뎅그렁
울려오는, 슬픈
화음和音

그대는 비인 창窓
닫혀 있다
닫혀만 있다
(1976)




Fernando Sor, 24 Exercices tres faciles, Op.35 No.22 in B minor, “Moonlight”

Turibio Santos, guitar


다음 이미지 (내겐 민들레 사진이 없다ㅠ)


Tchaikovsky, 
〈The Seasons〉 Op.37b “October ('Autumn Song')”

Orchestration by Alexander Gauk
RTV Moscow Large Symphony Orchestra
Vladimir Fedoseyev, cond.
Release, 2008


*


민들레

홀씨라고?

홀씨 아냐
나는 사랑을 앓을 줄 알아
그 사랑이 아플수록 피어나는 꽃은 더 예쁘지

네까짓 꽃이 무에 예쁘냐고?

그래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랑을 하지
그 사랑의 봉우리로 사랑을 띄워 보내기도 해
물론이야
제 사랑의 부피만큼 아파해야지

장미만 예쁜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향기로운 그리움이 있는 법이야
이제 나는 빈 가슴으로 저물어 가지만

홀씨 아냐,
나는 사랑스런 꽃을 피웠거든
꽃마다 씨앗이 되어 제 몫의 사랑을 향해 떠나갔거든

녀석들
오래도록 퍽 아플 거야
사랑은 그렇게 깊이 앓는 그리움이거든
오래 곰삭아야 피어나는 간절함이거든



어려서 많이 듣고 부르던 노래,
일본 사람들이 번안한 가사를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는 찝찝함이 있다.
오늘은 첼로의 낮은 음빛깔로 어린시절을 돌아본다.
요즘은 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늙은 게 분명해.

*

https://youtu.be/1vzcmNKKa-c

 

  가을을 먹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소슬하다. 아직 낙엽이 포도 위를 굴러다니는 일은 없지만, 성마른 나뭇잎들은 벌써 제멋에 취해 불콰해진 얼굴을 초록의 뒤로 감추고 있다. 시나브로 더 감출 수도 없는 가을의 취기가 온 산하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누른 논에서는 옹골진 나락들이 점점 더 겸손해지고 험한 가시울타리 안에서도 과실들이 튼실하게 씨알을 불리고 있다. 잘 익은 감처럼 가을은 익어간다.

  어느 산의 단풍이 지금 한창이라는 둥 어디 억새가 예나 다름없이 운치 있다는 둥 사무실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염장 지르는 소식들이 줄을 잇는데,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마다 일희일비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딱히 그것을 염장 지르는 일이라고 못 박아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싶다. 구름발치가 한층 깊어지고 쪽빛 하늘이 유난히 쨍쨍한 날이면 자리를 박차고 들로 산으로 나대고 싶은 마음이 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저이 속엣것을 다 드러내며 살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대개는 그저 투덕투덕 스스로를 위로하며 사는 것일 뿐.

  가을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설(說)이 있지만 대강 ‘열매를 끊는다’는 의미의 ‘갓다’의 어근 ‘갓’과 ‘을’이 합해진 ‘갓을(끊을)’이 ‘가슬’이 되었다가 시옷이 탈락하여 ‘가을’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다른 주장도 어김없이 열매나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추수에 관계된 말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니 가을과 열매와 추수와는 그 어원(語源)으로부터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어원과 걸맞게도 과연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지난겨울 깊은 땅속에서부터 꿈꾸고 가꾸어 온 자신의 한살이를 매듭짓는 철이다.

  굳이 누구에게나 빠삭한 속담을 들추지 않더라도 모든 열매는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인다. 씨알이 굵어지고 낱알이 단단해지니 당연히 그러한 일을 가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겸손과 겸양의 표징인 양 내세운다고 되바라진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 말이 실로 적당한 쓰임이고 참으로 지당한 중의(重義)이니 유쾌할 따름이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경구(警句)가 새삼스러운 깨우침이 되어 다가온다. 알차게 익어 겸손해진 곡식보다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선 쭉정이를 바라보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그 비유가 얼마나 적절한지 그저 무릎을 치게 된다.

  짐짓 밖으로만 모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스스로 제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이 가을의 몫이다. 내가 가꾸고 거둘 열매는 잘 여물어 가고 있는가. 때가 되어도 고개를 곧추세운 비실(非實)이 바로 내가 아닌가…. 봄을 지나 여름을 견디고 이제 맞는 가을 앞에 바로 서서 새삼스럽게 옷깃을 매무시한다. 어디선가 묻힌 오물도 많고 조심성 없어 튄 국물 자국도 있다. 투덕투덕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 손길로 묻은 것 물든 것들을 털어내고 비벼낸다. 이제야 가을이 가을답다.

  어저께는 어느 친구에게 ‘와서 보리밥이나 함께 먹자’며 청을 넣었더니 돌아온 대꾸가 이랬다.
  “밥은 싫고, 가을이나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시인 났네, 하고 웃으며 응수하면서도 참 시의적절한 표현이지 싶었다. 그래, 나도 친구처럼 가을을 먹고 싶다. 할 수 있다면 하루쯤 시간을 내어 자연이 주는 가을의 의미를 내 안의 그것과 비겨보고 싶다. 부끄러움과 아쉬움투성이지만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고개 숙이고 낮아지는 자연의 질서를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고 싶다.

  오늘은 또 ‘대청호수의 은빛 물결을 바라보며 수많은 억새가 어우러진 오솔길을 걷고 싶다’며 이 친구 이렇게 꼬드긴다.
  “같이 가려우?”

                                                                                                                                                        (200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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