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을 지나면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소년처럼 깜깜한 동굴 속으로 떨어져 내리거나, 알 수 없는 흉포한 것들에 쫓기는 악몽으로 잠에서 깨어
머리맡에 켜 놓은 휴대전화에서 울리고 있는 노래를 듣다가 달아난 잠을 추스려 본다.
나는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아무도 들어줄 이 없는.


https://youtu.be/CXnLDj7aR-w

Josef Gabriel Rheinberger, Piano trio N0.4 in F major, Op.191

 

 

 



나이들어 가면서 아버지를 자주 생각한다.
아버지와 이어지는 기억은 아무리 쥐어짜도 한쪽 손의 손가락을 다 채울 만큼도 되지 않는데
그 몇 안 되는 장면들이, 물감이 덕지덕지 엉겨붙은 유화에서 칙칙한 색깔들이 거두어지듯 밝아지는 느낌이다.
나는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있는 걸까? 그건 아니다.
그분을 미워한 적이 없으므로 화해라는 말은 마뜩치 않지만 그래,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Saint - Saens, Sonata for Bassoon & Piano in G major, Op.168

1st mov. Moderato
2nd mov. Allegro Scherzando
3rd mov. Molto Adagio - Allegro Moderato

Bassoon, Rachel Gough
Piano, Julius drake
Recording, 2008






종일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도 없이 뛰쳐나가 들길이건 포도(鋪道)건 하염없이 걷던 어린 날들을 기억한다.
후줄근한 모양 그대로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공간을 내주곤 했다.
자라면서, 이제는 늙어가면서
그때처럼 그러지 못하는 까닭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내 마음에 때가 많아졌을까? 
할 줄도 모르는 계산이 깊어졌을까?

cello, Antonio Janigro (1954)


눈 쌓인 사진을 올려놓고 비 이야기를 했다.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라는데 정작 연주는 첼로가 했다.
비올라 다 감바가 첼로의 전신(前身)이 아니고, 그 두 악기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한다. 
눈 사진에 비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다.
전혀 다르지만, 그게 사는 일인 거다.
살아보니 그렇다.





가을 노래를 찾아 들으면 좀 시원해질까?
스스로 잡식雜食임을 증명하는 선곡이다.

1982년에 발표된 박건호 작사, 이범희 작곡, 이용의 노래
첼리스트 유튜버 '첼로댁' 조윤경의 연주







요세프 라인베르거, 이 작곡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꽤 오래 전에, 아내가 원하는 오르간 악보를 찾다가 그의 합창곡 하나를 반갑게 만났다.
'저녁 노래,' 혹은 '저녁의 노래'
더러 그 노래를 듣고 싶은 저녁이 있다. 오늘이 그렇다.


Josef Rheinberger, "Abendlied" Op.69, No.3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눅 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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