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3 해질녘




Gaetano Donizetti(1797~1848), Italian composer
Andante sostenuto for Oboe & Harp

Lajos Lencses, oboe
Rachel Talitman, harp
Rec., 1983


올해 들어
갑자기 찾아온 몸의 변화가 낯설고 편편찮다.
몸뿐 아니라, 건망증의 정도를 지나치는 깜빡거림도 생뚱맞기 그지없다.
이런 것이구나, 하고 수긍하기로 마음을 먹지만
마음과는 달리 퍽 서글퍼지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뭘 그러시나,
그리움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건데.
허허허.

 

 

R. Strauss, Violin Sonata in Eb, Op.18 II. Improvisation, Andante Cantabile

Akiko Suwanai, violin / Enrico Pace, piano


  불출(不出) 하나 ― 아들 이야기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아들 녀석이 아침 밥상머리에서 자못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드릴 말씀이 있노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제부터는 아빠를 아버지로, 엄마를 어머니로 부르겠으니 그리 아시란다. 얘기인즉슨 이제 저도 어엿한 학생이 되었으니, 애들이나 쓰는 엄마 아빠라는 말 대신에 점잖게 어머니 아버지로 부르겠다는 것이었다. 녀석의 진지한 모양새에 눌려 ‘그래 네 뜻대로 하렴’ 하고 대꾸하고는, 입학식이니 꾸릴 것도 없는 가방을 챙긴다고 아이가 달떠있는 사이에 역시 놀란 얼굴의 아내와 서로 마주보며 쿡쿡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전혀 웃을 일이 아니고, 녀석은 나름대로 여러 번 깊이 생각하고 결정했을 터이니 되레 기특하기도 한 일인데 왜 웃음이 났을까.

  어쨌거나 녀석은 그 후로 여태껏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또박또박 아버지, 어머니로 아비 어미를 불렀다. 데리고 시장에라도 다녀오고 나면 아내는 듣보는 사람마다 무슨 아이가 그러냐며 대견해한다고 기꺼워하면서도, 왠지 아이와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래서 녀석에게, 아버지는 네 뜻대로 불러도 좋은데 어머니는 더 자랄 때까지 엄마라고 부르면 어떻겠느냐고 중재(仲裁)하려 들었다가, 남자가 한번 말을 꺼냈으면 지켜야지 어떻게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특별한 까닭도 없이 물러서느냐고 무안(無顔)만 당했다. 그래 네 말이 옳구나. 네 생각이 옳아.

  녀석은 한여름 집안에서도 양말을 벗지 않았다. 집에서 반바지를 입는 것은 아주 많이 양보하는 것인데, 그나마도 외출할 때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더워도 셔츠의 단추는 맨 위의 한 개 이상은 절대 풀지 않았다. 이쯤 되면 아이가 보고 배우는 것이 있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그 아비 되는 인사는 집안에서의 복장이 지극히 자유스러운 편이었으니 대체 어디서 누구를 보고 그러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운데 양말도 벗고 짧은 바지에 민소매 옷을 입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권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았다. ‘옷차림이 단정한 것이 좋지 않느냐, 그런데 왜 보기에 거북한 차림을 하라고 강요하려고 드느냐’라고 말이다.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책 읽는 취미를 길러주려고 이것저것 책은 많이 사 주었으니 그것들 속에서 녀석에게 그런 영향을 끼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싶지만, 이건 아직도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더니 그즈음 흔하게 유행하던 머리에 노랑물들이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해서 이게 웬일인가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들더니, 그 실은 어쩌다 해본 말에 지나지 않았다. 다 자라서 대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아주 조금씩 융통성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녀석은 차림새에 관한 한 구닥다리였다.

  그렇다고 생각도 그렇게 꽉 막힌 샌님이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기도 하고, 또래의 친구들보다 웅숭깊게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았고, 약하고 여린 것들에 연민을 가지기도 했으니, 자식을 둔 어느 부모에게 그렇지 않으랴마는 참 복스러운 선물이 아닐 수 없는 녀석이었다. 특별히 물주고 가꾼 일도 없는데 튼실하고 보기 좋게 자라는 곡식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이 이러하겠다 싶을 만큼.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녀석을 맞으려고 아내가 대문을 열고 바라보니, 두 손에는 라면상자가 하나 들려있는데 말도 없이 닭의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더란다. 제 어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마침내 엉엉 울음을 터뜨려 한참 더 방성대곡(放聲大哭)을 하고 나서야 들려주었다던 이야기는 간명했다. 학교를 막 벗어난 길에, 차에 치었는지 죽은 비둘기의 사체가 있는데, 애어른 할 것 없이 숱해 많은 사람이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그 불쌍한 비둘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빈 상자를 하나 주워 죽은 비둘기를 담아 들고 집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그 비둘기는 그날, 녀석의 간절한 애도(哀悼) 속에 뒷동산 양지바른 기슭에 고이 묻혔다.

  그런 녀석이 지금 군 복무 중이다. 나라 지키라고 군엘 보냈더니 웬 전투경찰에 차출이 되어 남도의 어느 전경대에 속해 있다. 눈을 뜨면 시위 진압 훈련을 할 것이다. 상황이 생기면 시위대와 맞서 ‘나라’를 지키겠지. 요즘은 소외된 농민들의 시위가 잦으니 참 걱정스럽다. 농부의 자식인 주제에 목숨을 내걸고 농사(農事)를 지켜보겠다는 농민들의 심사를 몰라라 하기도 어렵고, 시위대에 끌려가 매를 맞는 전경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참 편편찮다. 더 걱정인 것은 녀석이 그 농민들이 안 됐다고 스스로 무장을 풀어버리고 그들 속으로 뛰어들까 봐서다. ‘할아버지가 농부셨으니 너도 농부의 자식인 거야,’ 이제 와 보니 자랑거리도 아닌데 그딴 소리는 왜 해서 키웠는지 원. (2005)

 

Schubert, Impromptu D.899 Op.90 No.3 in Gb major (Trumpet ver.)
Arr, Timofei Dokshitser

Timofei Dokshitser(1921~2005), trumpet
Sergej Solodovnik, pianoforte
Release, 1987

 

산(山)에서


나는 내 그림자를 산에 두고 온 적 없습니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듯 버리고 온 일 없습니다
산에서
버려진 듯 남겨진 그림자들을 본 적은 많지만
한 방향으로 누운 그것들은 그러나
그다지 쓸쓸하거나 슬퍼 보이지는 않습니다
해가 지면,
나무가 나무의 그림자를
꽃이 꽃의 그것을
구름이 구름의 그림자를
산이
아아, 산이 산의 그것을 일으켜
제각기 제 안으로 돌아가는 까닭입니다
내가 언제나 내 그림자를 추슬러
산을 내려오게 하시듯이.



 

 


오늘은 비가 왔다.
치악산 자락으로 이사를 왔지만, 병풍처럼 둘린 산들 가운데서
나는 아직 이 산의 주봉主峯이 어느 것인지 알지 못한다. 절로 알게 되겠지. 급할 건 없어.
두어 번 이사를 하며 방향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사십 년을 넘겨 살다가 이곳에 온 지 이제 겨우 두 주간이 지났다.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했다.
해가 반짝 났다가 요란하게 빗줄기를 내려꽂기도 하고 바람도 드세게 불어
멀쩡한 창문을 흔들어대기도 했다
그러다가 저녁을 건너뛰고, 밤이 왔다.
이 가을 저녁 나는 하릴없이 부산했다.
명상은 고사하고, 급하게 다녀오느라 화장실 문 앞에 떨어뜨린 생각 하나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까맣게 잊었지만, 그냥 잃어버리기는 아쉬운 말들이었는데…

 

 

 

"가을 저녁의 조용한 명상(Quiet Meditation on an Autumn Evening)" in F#m, WAB 123

Anton Bruckner(1824~1896), Austrian composer & organist
Vadim Chaimovich(1978~ ), Lithuanian pianist



 

 

 

 

 

 

가끔 찾아 듣는 첼로 버전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더블 베이스로 연주하는 실황을 만났는데,
연주하는 이들은 국적도 이름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덩치 큰 악기로 하는 1악장 연주를 귀 기울여 들었다.
청중과 손 내밀면 닿을 듯한 연주회장은 비좁아 보였고
좀 거칠게 느껴지는 음질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사라진 악기의 이름이 음악의 제목이 된 이 곡이 좋다.
아르페지오네를 다시 만들어 연주하는 이들은 없을까?
첼로 비슷한 몸통에 기타처럼 지판에 음정을 나누는 프렛이 있었다던
그 악기가 궁금하다.

 

 

Schubert, Arpeggione Sonata, 1st mov. (double bass ver.)

Bozo Paradzik, double bass
Mira Wollman, pianoforte



 


이른 새벽 태백(太白)을 오르다

 

뚝뚝 눈물 흘리고 있었던 게 분명해
누가 저를 바라보는 걸 눈치채고 시치미 떼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는 그 눈망울 저리도 그렁그렁할 수가 없어
결코 낮은 산이 아닌데도 순한 양처럼 엎드린
그 등성이를 눈길로 쓰다듬다가 문득 눈물이 돌기 시작했을까
어쩌면 나처럼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 건지도 모르지
아니면 고향 동무의 버짐 핀 얼굴이 그리웠을까
한 녀석이 그러니 너도나도 덩달아 입술 깨물고 눈물 흘렸을 거야
알다시피 그런 건 왜 전염이 잘 되는 증상이잖아
아무리 모른 척하고 눈 깜빡거려도
봐, 이것 좀 봐
무심한 내 눈에도 고이는 이 뜨거운 눈물 낮아지고 싶어
낮아지고 싶어 이른 새벽 태백을 오르다 올려다본 깜깜한 하늘
쏟아져 내릴 듯 반짝이는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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