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io Bazzini(1818~1897), Scherzo Fantastique, Op.25
“La Ronde des Lutins(요정의 춤)”


https://youtu.be/B0klywZ9k6w

Svetlin Rossev, violin / 손열음, pianoforte

 

밝고 빠른 바이올린 한 곡을 찾아
문득 떠오른, 치기(稚氣) 가득한 ─ 해묵은 단상(斷想) 위에 얹어놓고 듣는다.

 

*


  비를 맞으며


  문을 나서니 소록소록 는개가 내린다.
  비가 오는 것 같지도 않아 우산을 펴들기가 열없는데, 그래도 한참을 그냥 걷다 보면 시나브로 옷이 젖어 들 것이다. 이런 날은 정한 곳이 없더라도 하염없이 걸었으면 좋겠다. 어려서처럼 우산도 내던져버리고 싶지만, 산성비로 오염된 대기가 불현듯 떠오르는 낭만을 무지르고 만다.
  그쳤나? 우산을 젖히고 고개를 들면 는개는 흘러가듯 가만가만 메마른 내 얼굴 위에 내려와 얹힌다.
  어려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참 많이도 걸었다. 여름비도 몇 시간을 후줄근히 맞고 나면 입술이 파랗도록 한기가 찾아오기는 하지만, 장맛비 속을 그렇게 걷고 나면 가슴 안에 고여 있던 검붉고 큼직한 흉터 하나가 씻겨나가는 것만 같아서 그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가도 비가 쏟아지면 그저 뛰쳐나가고는 했다. 물이 뚝뚝 듣는 시르죽은 모양으로 하학길 버스에 오르면 여학생들은 기겁을 하고 몇 걸음씩 물러났었다.

  주성(舟城)이라고도 불리던 시골의 작은 도시는 이물에서 고물까지를 꿰뚫어 걸어도 그저 한 시간 남짓이면 넉넉했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검은 교모(校帽)를 더 깊이 눌러쓰고 타박타박 빗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삶이었을까. 막연하여 손에 잡을 수 없는 미래였을까. 60년대 말(末)의 누구라고 예외가 있었을까만, 곤고(困苦)한 집안의 형편 따위였을까.
  무엇이 나를 빗속으로 끌어냈는지, 쏟아지는 빗줄기가 내 안에서 씻어 간다고 믿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지금도 적확(的確)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랴! 비만 오면 나는 빗속에 있었다. 우산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맨몸으로 비를 맞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왜? 왜라고 묻는 것은 속절없다. 왜인들 어떠랴! 비가 오시므로 비를 맞았다.
  지금 되생각해 보아 다만 아쉬운 것은 그때 발을 벗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거다. 맨몸에 맨발이었다면 그 씻김이 더욱 간절하지 않았을지….

  일찍 학교에서 돌아온 날인지 쉬는 날이었는지, 제법 포기가 번 무논에서, 혼자 피사리를 하던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갑자기 발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논에서 멀지 않은 팔결 냇가의 제방(堤防)으로 달려가 수문(水門) 꼭대기로 올라서서 비를 맞았다.
  천둥이 우르릉 울고 번개는 번쩍 하늘을 갈랐다. 들에서 번개가 치면 낮은 곳으로 몸을 숨기라는 상식을 모르지 않았지만, 들판보다 높은 제방 그보다 더 높은 수문의 꼭대기로 기어오르며 나는 한순간 번개의 고압 전류에 감전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지 그날 거기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노래를 불렀다. ‘목이 메여 불러보는 내 마음을 아시나요…’, 기억이 분명치는 않아도 아마 그즈음에 유행하던 대중가요였기 십상이다. 목이 메도록 부르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지….
  순간, 우르릉, 번쩍. 천둥소리와 거의 동시에 쩍 소리를 내며 수문 꼭대기에 떨어진 번개는 그 가운데 박힌 철 구조물을 타고 땅으로 꽂히며 진저리를 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수문에서 제방 아래의 풀 무더기로 내동댕이쳐져 있었는데, 그게 스스로 뛰어내린 건지 아니면 무엇인가 나 아닌 것의 의지로 그리된 것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아무튼, 수문 위에서 그저 목이 메고만 있었다면, 그리던 대로 낙뢰에 바짝 구워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세게 퍼붓던 소낙비가 멎고 그리고는 반짝 해가 났다. 나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논으로 돌아가 해지도록 피사리를 하고, 그날 유난히도 곱던 노을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잎의 모양이 서로 다르기도 하지만, 볕에 비추어보면 피는 벼의 잎보다 참 맑은 연둣빛으로 말갛게 제 속을 드러내 보인다. 그렇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억세고, 벼에게는 이롭지 못한 그 예쁜 빛의 덩이를 솎아내는 것이 피사리다.
  그날 열기로 가득한 논에 엎드린 어린 가슴에 사는 일과 죽는 일의 속절없음이 절절하게 깨우쳐지던 것을 상기도 기억한다. 삶과 죽음이란 번쩍하는 한 순간의 기로(岐路)인 것이다. 제아무리 예쁜 빛으로 치장을 해도 가차 없이 그것을 거두는 농부의 엄정(嚴正)한 손길이 있음은 또한 얼마나 엄정(嚴整)한가.

  생각이 별스럽게도 튀었지 싶다. 흩날리는 는개, 그렇구나, 는개는 내린다고 말하기보다 눈발처럼 흩날린다고 해도 좋겠다.
  흩날리는 는개 속을 헤엄치듯 걸으며 떠올린 옛 생각 하나가 멋쩍다. 쉰을 활씬 넘긴 지금은 말할 수 있는가. 왜 걷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걷게 하는지….
  세상은 지금 온통 어지러운 는개뿐이다. 태초의 카오스와도 같은, 끝없는 는개의 바다.                                 
(2006.06.27.)




별은 꿈을 꾸지 않는다.
별에게 꿈을 꾸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꿈을 꿀 줄 모르는 별에게 짐짓 꿈꾸기를 부담하는 것은 다만 사람의 욕심이겠다.
나는 별에게 지나친가? 별을 꿈꾸게 하는 그 사람에게 그런가?
이래서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거다.^^

지난 꼭지에서 국악기로 연주된 남미의 음악을 들었으니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음악을 우리 악기의 연주로 듣는 것도 의미가 있지 싶다.
퍽 낯설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전승되었다는, 생황이라는 악기다.



https://youtu.be/gYwxrXKSeAI

박경훈 작곡, “꿈꾸는 별” 생황 김효영, 피아노 조윤성
 

생황(笙簧)은 한국의 전통 관악기로, 중국의 악기인 '()'이 삼국시대에 들어와 토착화된 악기이다.
우리의 생황은 중국의 셩에서 크게 바뀌진 않았으나, 조금 더 작으며 튜닝법 또한 다르다.
본디 박(바가지)으로 통을 만들었기 때문에, 국악기 중 유일하게 포부(匏部)*에 속하며 한국의 관악기 중 유일한 화음 악기이기도 하다.
(
나무위키에서 발췌)

* 사전에서 포부(匏部)’를 찾아보면 팔음(八音)의 하나라고만 되어 있고,
다시 팔음을 찾으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악기를 만든 재료에 따라 여덟 가지로 분류하는 방법.
(), (), (), (), (), (), (), () 따위가 재료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포()는 박(바가지)을 뜻한다.





피아졸라의 "망각"이라는 곡이다.
반도네온이나 첼로 연주로 더러 듣곤 했는데, 오늘 우연히 국악 버전의 이 영상을 만나 여러 번 듣고 있다.
아쟁과 피리, 우리의 악기여도 부러 찾지 않으면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쟁이 첼로보다 더 아리게 가슴을 파고들고, 피리는 반도네온보다 활씬 깊숙하다.
듣기에 좋으면 좋은 음악이라는 것이 선곡을 하는 내 기준이다.
그런데 좋다. 그러면 됐다.

사족이지만, 나는 잊고 싶은 기억이 별로 없다.
음악은 음악으로 들을 뿐이다.



https://youtu.be/4mytcAZj1ys

Astor Piazzolla, "Oblivion" (국악 ver.)

 





이 밤을 지나면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소년처럼 깜깜한 동굴 속으로 떨어져 내리거나, 알 수 없는 흉포한 것들에 쫓기는 악몽으로 잠에서 깨어
머리맡에 켜 놓은 휴대전화에서 울리고 있는 노래를 듣다가 달아난 잠을 추스려 본다.
나는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아무도 들어줄 이 없는.


https://youtu.be/CXnLDj7aR-w

Josef Gabriel Rheinberger, Piano trio N0.4 in F major, Op.191

 

 

 



나이들어 가면서 아버지를 자주 생각한다.
아버지와 이어지는 기억은 아무리 쥐어짜도 한쪽 손의 손가락을 다 채울 만큼도 되지 않는데
그 몇 안 되는 장면들이, 물감이 덕지덕지 엉겨붙은 유화에서 칙칙한 색깔들이 거두어지듯 밝아지는 느낌이다.
나는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있는 걸까? 그건 아니다.
그분을 미워한 적이 없으므로 화해라는 말은 마뜩치 않지만 그래,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Saint - Saens, Sonata for Bassoon & Piano in G major, Op.168

1st mov. Moderato
2nd mov. Allegro Scherzando
3rd mov. Molto Adagio - Allegro Moderato

Bassoon, Rachel Gough
Piano, Julius drake
Recording,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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