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도 없이 뛰쳐나가 들길이건 포도(鋪道)건 하염없이 걷던 어린 날들을 기억한다.
후줄근한 모양 그대로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공간을 내주곤 했다.
자라면서, 이제는 늙어가면서
그때처럼 그러지 못하는 까닭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내 마음에 때가 많아졌을까? 
할 줄도 모르는 계산이 깊어졌을까?

cello, Antonio Janigro (1954)


눈 쌓인 사진을 올려놓고 비 이야기를 했다.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라는데 정작 연주는 첼로가 했다.
비올라 다 감바가 첼로의 전신(前身)이 아니고, 그 두 악기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한다. 
눈 사진에 비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다.
전혀 다르지만, 그게 사는 일인 거다.
살아보니 그렇다.





가을 노래를 찾아 들으면 좀 시원해질까?
스스로 잡식雜食임을 증명하는 선곡이다.

1982년에 발표된 박건호 작사, 이범희 작곡, 이용의 노래
첼리스트 유튜버 '첼로댁' 조윤경의 연주







요세프 라인베르거, 이 작곡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꽤 오래 전에, 아내가 원하는 오르간 악보를 찾다가 그의 합창곡 하나를 반갑게 만났다.
'저녁 노래,' 혹은 '저녁의 노래'
더러 그 노래를 듣고 싶은 저녁이 있다. 오늘이 그렇다.


Josef Rheinberger, "Abendlied" Op.69, No.3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눅 24:29)

 

 

 

 



어느 날이었나,
어느 낡은 건물의 층계 모퉁이, 버려진 듯한 화분에 피어 있던 꽃 몇 송이가
내 휴대폰 카메라에 붙들려 온 적이 있다. 
저런 환경에서도 꽃을 피워냈다니! 하고 내심 탄성을 지르게 한
낯이 썩 익지 않은 그 꽃의 이름이 물 건너온 원예종 '가랑코예'라고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나마 화분의 흙이 웬만큼 영양분을 가지고 있었는지
꽃의 낯빛이 그렇게 비루하지는 않았던 것이 퍽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아다지오, 그래도 꽃은 천천히 꽃대를 밀어올렸을 것이다. 
칸타빌레, 그렇거나 말거나 노래하듯이 꽃잎을 열었을 것이다.
아다지오 칸타빌레.
나도 이제 이만큼 살아왔으니 그 꽃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서두를 것이 무에 있겠나, 천천히 노래하듯이 흘러갈 수 있으면 좋겠다.
느리게, 노래하듯이.


Beethoven Piano Sonata No.8 in C minor, Op.13 'Pathetique' 2nd mov., Adagio Cantabile

 

 


매일 바라보는 하늘도 늘 똑같지 않다.
매번 만나는 사람도 항상 같은 표정을 짓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고 만나는 사람들 또한
매일 매번 똑같은 '나'를 만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恒常心을 지킬 수 있어야 하는데, 
번번이 허방을 짚는 걸음걸음.

Trumpet, 박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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