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rique Granados (1867~1916)
〈Allegro de concierto for piano in C major, Op.46

María Dolores Gaitán, piano
Release, 2019



호소(呼訴)

김 현 승 (金顯承, 1913~1975)


사랑하지 않고서
나는 이 길을 더 나아갈 수 없나이다,
사랑하지 아니하고서는

缺乏(결핍)된 우리의 所有(소유)는
새로운 假說(가설)들의 머나먼 航路(항로)가 아니외다,
길들은 엉키어 길을 가리우고 있나이다.

사랑의 기름 부음 없이
꺼져가는 내 生命(생명)의 쇠잔한 횃불을
더 멀리는 태워 나갈 수 없나이다,
사랑의 기름 부음 없이는

배불리 먹고 마시고, 지금은 깊은 밤,
모든 知識(지식)의 饗宴(향연)들은 이 따위에 가득히 버리워져 있나이다,
이제 우리를 풍성케 하는 길은
한 사람의 깊은 信仰(신앙) 사랑함으로 神(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외다.

사랑하지 아니하고 어찌하리이까,
허물어진 터전, 짓밟힌 거리마다,
싸늘한 鐵筋(철근)만이 남은 假說(가설)들을 부여잡고
오늘 멍든 우리들의 가슴을 부비어야 하리이까?
부러진 우리들의 죽지를 파닥거려야 하리이까?

하염없이 무너져 나간 文明(문명)의 자국들 進步(진보)의 이름으로
우거진 주검의 쟝글 속에서,
지난날 智(지)의 冠(관)을 꾸미던 모든 나라의 찬란한 寶石(보석)보다
더욱 빛나는 것은 오늘 사랑의 한끝인 당신의 눈물이외다!

사랑하지 않고 어찌하리이까,
偉大(위대)한 喪失(상실)을 通(통)하여 숨지던 極東(극동)의 山脈(산맥)에서
디엔비안의 더운 屍體(시체)위에서
저무는 날 救援(구원)을 기다리던 北海(북해)의 먼 港口(항구)에서
오오, 마침내 兄弟(형제)의 義(의)로 맺어진 咀呪(저주)받은 따위 우리들,
푸른 하늘에 사는 눈동자, 타는 입술이 그렇게도 닮은 우리들

우리들의 처음 고향은 사랑이었나이다!
永劫(영겁)에도 그러할 것이외다!



Franz Joseph Strauss (1822~1905)
Theme & Variations for horn and piano
in E-flat major, Op.13

Radek Baborák, horn
Yu Kosuge, piano
release, 2010



서울 뻐꾸기



윤사월 해는 길어

이러구러
일손 놓이는 오후 한 녘

눈 감고 그려보는
울음소리 하나
─ 뻐꾹
잃어진 고향도 하나
─ 뻐꾹

그리다 지친 가슴도 하나
─ 뻑뻐꾹

사무실 창 너머엔
빛깔도 바랜
뜨거운 해무리만 걸려 있고

서울 사는 시골 사람들은
제각기
한 번 씩밖에 울 줄 모르는
뻐꾸기
한 마리 들이다.



(1982. 6)


 

 

Arcangelo Corelli (1653~1713, Italian violinist & composer)
“La Follia” Sonata in G minor Op.5 No.12

Frans Brüggen, ricorder
Anner Bylsma, violoncello
Gustav Leonhardt, harpsichord
rec, 1980

 


孤獨



너를 잡기에는

이 무서운 다리를

눈 감고 건너야 한다



(1968)


 

Richard Strauss, Duet Concertino for Clarinet, Bassoon, Strings, AV.147

1 mov. Allegro moderato / 2 mov. Andante / 3 mov. Rondo

Luis Rossi, clarinet
Ezequiel Fainguersch, bassoon
Chile Chamber Orchestra
rec, 2018





기다리며


검붉은 노을 위에 구름이 달아나오
이름 없이 죽어간 / 작은 새의 울음이
어둠이 다가오는 조그만 언덕 위에
피 묻은 깃발을 세워 놓았소

스산한 묘지 위에 바람이 뛰어가오
마른 풀잎 틈새마다 / 잃어진 기억들이
검푸른 상처마다 부서진 마음들이
길고 긴 철길처럼 / 모일 줄을 몰랐소

타다가 시드는 / 핏빛 노을 그 위로
조그만 조약돌을
힘껏 던지오

(1975. 05)


노래를 하나 만들고 싶어서 썼던 노랫말,
노래는 가락을 얻지 못하고 말 같지도 않은 말만 남았다.


 

Albert Ketelbey (1875~1959, 영국 작곡가)
〈Sanctuary of the Heart〉

New Symphony Orchestra
Robert Sharples, cond.
release, 1959



잠꼬대


엄마 보고 싶다 아들 보고 싶다 동생들 보고 싶다 남편도 보고 싶다

또박또박 토막을 치며 하는 아내의 잠꼬대

장모님 오래전에 하늘나라 가셨으니 그렇고
큰처남 순서 무지르고 세상 떠났으니 또 그렇고
작은처남이나 아들은 멀리 따로 사니 그럴지언정
매일 눈뜨면 얼굴 마주하는 나를
왜 꼬집어 보고 싶다는 걸까

잠꼬대하는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나는
그가 보고 싶어 하는 내가 아닐지도 모르지
칠십을 넘게 살아도 덜 자란 내가
제대로 숙성된 남편이기를 바라는 거겠지

미안해요, 미안해요
잠들면 나도 절로 잠꼬대하게 될까, 눈 더욱 말똥해진다


(202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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