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ri Bashmet, viola
London Symphony Orchestra
Neeme Järvi, cond.
Rec, 1996



‘로망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로맨스(romance)’의 비표준어라고 나온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는 나도 웃긴다.
각설, 오늘은 비올라로 듣는 비표준어 ‘로망스’다.
음악은 우리말처럼 ‘표준어’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Franz Liszt, “Consolations” S.172 No.3 Lento placido in D Flat Major

조성진, pianoforte
Release, 2021





음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리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 음악에 마음 한 자락을 얹는 것은 기도일 것이다.
그 마음씀이 그에게 가 닿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지 싶다.
바라보는 이가 없다고 별이 뜨지 않을 리가 없듯이
나는 그저 나의 별을 하늘에 걸어두는 것으로
그를 위한 기도라고 여기는,
그뿐이다.


 

Antonin Dvorak, 4 Romantic Pieces for violin & piano, B.150 (Op.75)

I. Allegro moderato 3'17
II. Allegro maestoso 2'30
III. Allegro appassionato 2'42
IV. Larghetto 7'51

*

Steven Isserlis, cello
Connie Shih, piano
rec., 2021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게으름을 피우는 아침마다 빛이 저렇게 꾸짖는다, 고 쓰면서도
빛은 아무를 혹은 아무것을 야단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더불어 한다.
실은 스스로 꾸짖고 싶은 것일 뿐이겠지만,
늦잠을 좀 잔들 어떠랴.

오늘은 종일 눈이 내렸다.
(어제 세차를 했거든!)

 

 

Napoléon Coste, Le Départ Op.31

나폴레옹 코스테(1782~1883)는 프랑스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어머니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후에 페르난드 소르의 제자가 되었다.
스승 소르가 사망한 후 소르의 교본을 편집 출판하기도 했다. ─ 퍼온 글입니다.

Kyuhee Park(박규희), Guitar
Release, 2021

 


"출발"이라는 기타곡을 만났다.
새해라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 그닥 즐기지 않지만, 음악은 나눠도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목선생님의 책을 다시 읽다가, 이 즈음에 어울릴 수필 하나를 여기에 타이핑한다.
짧은 글이지만, 추사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절로 그려지는 그림이 될까?
아버지가 그립다,라는 말을 내가 할 수 있다니….


세한도(歲寒圖)

목 성 균


  휴전이 되던 해 음력 정월 초순께, 해가 설핏한 강 나루터에 아버지와 나는 서 있었다. 작은 증조부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강만 건너면 바로 작은댁인데, 배가 강 건너편에 있었다. 아버지가 입에 두 손을 나팔처럼 모아대고 강 건너에다 소리를 지르셨다.

  “사공―, 강 건너 주시오.”

  건너편 강 언덕 위에 뱃사공의 오두막집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노랗게 식은 햇살에 동그마니 드러난 외딴집, 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 오두막집 삽짝 앞에 능수버드나무가 맨몸뚱이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 둥치에 비해서 가지가 부실한 것으로 보아 고목인 듯싶었다. 나루터의 세월이 느껴졌다.

  강심만 남기고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 해가 넘어가는 쪽 컴컴한 산기슭에는 적설이 쌓여서 하얗게 번쩍거렸다. 나루터의 마른 갈대는 ‘서걱서걱’ 아픈 소리를 내면서 언 몸을 회리바람에 부대끼고 있었다. 마침내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갈대는 더 아픈 소리를 신음처럼 질렀다.

  나룻배는 건너오지 않았다. 나는 뱃사공이 나오나 하고 추워서 발을 동동거리며 사공네 오두막집 삽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사공 집 삽짝 앞의 버드나무 둥치처럼 꿈쩍도 않으셨다. ‘사공―, 강 건너 주시오.’ 나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한 번 더 질러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 그걸 아버지는 치사(恥事)로 여기신 것일까. 사공은 분명히 따뜻한 방안에서 방문의 쪽 유리를 통해서 건너편 나루터에 우리 부자가 하얗게 서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선의 효율성과 사공의 존재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나루터에 선객이 더 모일 때를 기다렸기 쉽다. 그게 사공의 도선 방침일지는 모르지만, 엄동설한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옳은 처사는 아니다. 이 점이 아버지는 못마땅하셨으리라. 힘겨운 시대를 견뎌내신 아버지의 완강함과 사공의 존재가치 간의 이념적 대치였다.

  아버지는 주루막을 지고 계셨다. 주루막 안에는 정성 들여 한지에 싼 육적(肉炙)과 술 항아리에 용수를 질러서 뜬, 제주(祭酒)로 쓸 술이 한 병 들어있었다. 작은 증조부께 올릴 세의(歲儀)다. 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세의를 지고 꿋꿋하게 서 계시던 분의 모습이 보인다.



 

 

Ottorino Respighi, Adagio con variazioni for cello and orchestra p.133

Andrea Noferini, cello
Orchestra Sinfonica Di Roma
Francesco La Vecchia, cond
Rec, 2010



오늘은 내내 눈이 내립니다.
그냥 두면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기가 어렵지 싶어
저녁 무렵에 차를 덮은 두툼한 눈 이불을 한 차례 벗겨주었습니다.
얼마나 또 내려 쌓일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를 하루 남겨두고
무슨 서설(瑞雪)이니 하는 허풍은 떨지 않기로 합니다.
새해든 구랍이든 다 같은 하루들을 모아 갈라놓은 거지요.
사람들이 제 편리한 대로 날을 정하고 달을 얹고 해를 그려넣은 것일 뿐 아닌가 합니다.
그래도, 그렇더라도 이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서로 건네는 덕담까지 백안시할 까닭은 없겠지요.
저도, 누가 부러 찾아와 볼 일도 없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곳에 인사 한마디 남겨 둡니다.
혹 일별하며 지나치실 이 있으면 섭섭치 마시라는 소회(所懷)입니다.

새해 복 많이 빚으시고 누리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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