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Litanei auf das Fest aller Seelen〉 D.343

Harriet Krijgh, cello
Magda Amara, piano
Release, 2021



해종일
머릿속을 헤매던 말 몇 마디를 주저앉히고 싶어 조바심했지만,
그 말들은 내 것이 아닌 모양이다.
몇 줄 쓰던 글을 버렸다.
마음이 편하다.


 

'걸어가기54'님의 사진입니다.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Edvard Grieg, Lyric Pieces, Book 5, Op. 54 No. 4, Notturno (Nocturne)
(Arranged By Steve Erquiaga)

Steve Erquiaga, guitar
Release, 2003


 
악수(握手)


문(門)을 열고 문밖을 본다
문밖에는 문을 닫고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유리창으로는 내다보이지 않는 것
햇살의 따가움이거나 땀 찬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 따위
문밖에는 문을 열고 내다보아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포르르 박새들이 내려앉으며 지저귀는 소리와
배고픈 들고양이의 철없는 응석 같은 것

문을 닫고 문 안에 앉아서 바라보는 문밖과
문을 열고 문 안에서 만나는 문밖과
문을 열고 나서서 만져보는 문밖과
문 안에서 나를 보듬는 것들과
열린 문으로 들어와 나를 감싸는 것들과
문밖에서 나를 만지는 것들과
나는 그것들끼리 악수하도록 시킨다
그것들은 서로 악수하기를 꺼리지만 나는 강권(强勸)한다

문 안에서 문밖을 보면서도
문을 열고 문밖을 보면서도
문밖에 나가 문밖을 보면서도
보이는 것들 나를 만지는 것들에게
악수하기를 권한다, 강권한다

더러 선뜻 악수하는 놈들을 보면
가슴이 따스해져
웃, 는, 다


 

마땅한 사진이 없어서 naver image 하나를 차용하였습니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Arvo Pärt (1935~    ), "Spiegel im spiegel(거울 속의 거울)" for violin & pianoforte

Daniel Hope, violin
Jacques Ammon, pianoforte
Rec, 2020

에스토니아가 낳은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Spiegel im Spiegel)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지만
바이올린 파트가 첼로나 비올라로 흔히 대체되기도 한다.
미니멀리즘의 대표작으로, 격정적인 내면의 세계가
서서히 초월적인 영적 세계로 침잠하는 듯 절제와 고요함이 반복된다.
(앨범 소개글에서)



거울

이 상 (1910~1937)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 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 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Edvard Grieg (1843 - 1907)
Cello Sonata in A minor, Op. 36
II. Andante molto tranquillo

Steven Isserlis, cello / Stephen Hough, pianoforte
Rec, 2013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오래되어 색이 바랜, 어머니를 품은 몇 줄 글을 소환해 본다. 


겨울밤


이 많은 실을 언제 다 감지?
어린 두 손으로
어머니가 둘러주신 타래실 받쳐 들고

지루해 팔 아파 몸을 꼬다가
어느새 꾸벅꾸벅 졸음 쏟아질 때면
사탕처럼 달콤하던 어머니의 인사

고맙구나 고마워

올올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
어머니의 바지런함에 가서 감기던
실의 부피 간지럽고

다 됐다

따듯한 그 품에 안기어 바라보던
반짇고리에 방금 드러누운 배불뚝이
참 편안한 실패


 

Samuel Barber (1900~1981)
String Quartet in B minor, Op.11
II. Molto adagio

현악 합주로 편곡되어 영화 “플래툰”의 주제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그 유명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본디 모습이
이 현악 4중주의 2악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흔치 않은 것을 좋아하는 내 선곡에 마침맞다.

Endellion String Quartet
(Andrew Watkinson, violin / Ralph de Souza, violin / Garfield Jackson, viola / David Waterman, cello)

 


忍冬


겨울을 지나온 바람 한 줄기
현관 문턱에 걸려 있다
나가던 길인지
들어오려던 참인지
일순 멎어버린 내 숨도
덩달아 거기 걸렸다
나는,
나가던 참이었을까
들어오는 길이었을까

겨울을 잘 견뎌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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