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z Liszt (1811~1886)
Trois Etudes de Concert for piano, S.144
No.3 “Un Sospiro”

서혜경, piano
Rec, 2008


 
늦게 산에서 내려오다


이제 내려갈까, 신발 끈 고쳐 매는데, 하마 해가 졌다.
쉬지 않고 걸으면 깜깜해지기 전에 내려갈 수 있겠지.
자주 다녀본 길이니 걱정하지 말자.
누가 잰걸음으로 지나쳐 간다.
저 사람도 꽤 늦었군.
휘적휘적 휘파람 불며 한 삼십 분쯤 내려왔을까.
벌써 어둡다.
말갛게 보이는 게 돌이겠거니, 짐작만으로 딛는 걸음이 자꾸 무뎌진다.
익숙한 길이라고 얕잡아본 게 머쓱하도록 불쑥 바위가 막아서고
숨이 턱 막히도록 허방을 짚기도 한다.
배낭에서 헤드랜턴을 꺼내 모자에 두르고 불을 켰다.
동그랗게 어둠을 밀어내는 한 덩이의 빛이 내 걸음을 따라 덩실덩실 춤바람이다.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 님 함께 집에 오는데…
생각을 밀어내려고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등 뒤 어둠 속으로 연 꼬리처럼 날린다.
솟적다 솟적다 찌르르찌르르 새들의 소리가 그 어둠처럼 깊어지는데
어이쿠, 쉰내 나는 인기척, 아까 종종종 지나치던 그다.
그가 정강이를 덮는 어둠에 허둥지둥 쩔쩔매고 있다.
아직 반도 못 왔는데 어쩌나…
새치름히 내 불빛을 피해 한옆으로 비켜선다.
앞서가시지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모자의 랜턴을 풀어 손에 쥐고는 그의 발 앞을 비추며 걷는다.
아깝게도 나는 휘파람을 놓쳤다.
불도 없이 늦으셨네요.
이럴 줄 몰랐습니다.
두런두런 좁은 산길을 쥐락펴락, 평평하면 좀 서둘고 가파르면 느긋하게 걸어보자.
사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올랐던 산이었다.
사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뻘뻘 땀을 흘렸고 아무 기색 없이 앉아 쉬기도 했다.
그리고는, 사실 아무 염려도 없이 그렇게 돌아오면 될 일이었는데
몰라라 하고 버릴 수 없는 동행을 만나 나는 뜻한 바 없는 생각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염려도 한다.
그의 걸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내가 그의 걸음을 은연중에 재우치고 있는 건 아닐까.
더 물어볼 말도 없어 마른침만 삼키는데 자꾸 헛놓이는 그의 걸음새는 또 왜 안타까운가.
이러구러 멀리 보이는 불빛, 매표소 부근이다.
저, 소피를 좀….
예, 다녀오세요. 기다리지요.
마지막 어둠을 바래주고 큰길로 나섰다.
형씨, 고맙수.
예, 뭘요.
그는 혼자 밥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버스를 탔다.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배낭을 열고 랜턴을 집어넣고 지퍼를 닫았다.
나무 문이었으면 탁, 하고 소리를 내어 닫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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