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문에서 산성계곡 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대성암大聖菴이라는 작은 절집이 있습니다.

 

 

두어 층의 축대 아래에는 검박儉朴한 채마밭이 푸른 먹을거리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그 주변에는 딱히 가꾼 것 같지는 않지만 부러 심겼을 꽃들이 만발해 있습니다.

쑥부쟁이, 구절초, 산국, 씀바귀, 괴불주머니 따위가 그윽하게 계절을 알려주고 있는 틈틈이

무더기무더기 자리차지를 한 여뀌는 불청객임에 틀림없습니다.

 

 

봄에 내걸었던 연등이 빛이 바랜 채로 사위어가고 검붉은 칠을 한 양철지붕의 암자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한껏 볼륨을 높인 법어法語가 울려 퍼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 법어는 큰스님의 녹음된 설법을 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목어木魚를 치며 외는 독경소리도 아닙니다.

속인俗人에게는 생경한 불교음악 범패梵唄도 아니지요.

'가을 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이거나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따위의

고운 노랫말을 가진 70년대의 귀에 익은 포크송들이랍니다.

 

 

지나치는 등산객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그런 음악을 골라 들려주는 거겠지

그게 왜 법어가 되느냐고 물으시면 딱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마는

그 계곡을 따라 한참을 더 내려가 만난 노적사露積寺의 독경소리보다

숲 그늘에 숨은 듯 작은 암자에서 들리는 그 노래들이 제게는 더 큰 울림이더라는 겁니다.

각설, 그런 절집에 사시는 스님은 장발에 기타를 메고 계시지는 않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오늘 보니, 머리도 단정하고 법복法服도 말쑥하게 차려입으신 아주 잘 생긴 분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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